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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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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D+5

남편찬스로 막간을 이용한 출산후기.

 

예정일은 7월 29일. 출산은 7월 31일 오전 6시 30분.

 

7월 28일. 목.

드디어 예정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날부터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이슬인가? 첫애는 3주나 일찍 양수가 터져서 유도분만을 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출산의 과정은 나도 생소해서 내내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읽기로는 점액이 많은 빨간색 이라던데.. 그냥 피가 조금, 손가락 하나 정도 양으로 나왔다. 처음엔 양수가 터진건가 싶어 놀랬다가 피여서 더 놀란 마음. 그래 이제 피가 나왔으니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일 안에 출산이 되긴 되는구나.. 놀란 마음에 출산 병원에 전화했더니, 일단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마침 두시간 후에 약속이 있던 터라 가보니, 피가 나온 건 어쨌든 출산의 시작을 알리는 거고,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 오늘은 아닐 수도 있겠다. 남편은 오전 회의만 하고 퇴근했다. 모두에게 곧 출산이 있을 것 같다고 알리고, 인사하고, 정리하고. 그래 진짜 몇 시간 안남았네.

 

7월 29일. 금.

예정일. 오늘은 우리 큰 애 어린이집 종강일. 방학식 겸 큰 아이들 졸업식 겸, 어린이집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가족들이 다 갈 수 있는 행사라 내가 이 행사는 우리 큰애를 위해 꼭 가고 싶었다. 속으로 아이야 방학식 끝나고 나와야 해. 오빠가 얼마나 실망하겠니. 제발 이 행사는 갈 수 있게 해줘. 라고 내내 얘기 한걸 들었는지 오전에도 아무 낌새가 없어서 나도 행사에 가기로 했다. 우리가 도착했더니 우리 애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저기 멀리서 부터 엄마를 보고 다다다다다다 뛰어오는데.. 그 표정이 말도 못하게 행복했다. 엄마 손을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다니면서 어린이집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자기도 엄마 왔다고 자랑도 하고 싶었나 보다. 그 자랑스러운 표정이 무척 흐뭇하면서도 마음이 아려 눈물이 날뻔했다. 엄마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 얼마나 초조했을 까. 어린이집 행사도 잘 끝나고, 할머니랑 점심도 잘 먹고, 피곤했는지 엄청 끙끙 대다가 우쿨렐레 선물을 받고 신난 어린이. 이 날도 출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분비물이 점액성 피로 바껴서, 아 이제 진짜 나오려나 보다. 두근두근.

 

7월 30일. 토.

점액성 피 분비물은 계속 이어졌다. 분비물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아 이제 진짜 나오겠구나 싶었다. 오후 2시반 3시 쯤 부터 배가 싸르르 아프기 시작했다. 아 이제 가진통이 시작되는건가. 약간 생리통 처럼 순간의 불편한 느낌이 잠깐 있다 없어지는 상태가 오후 내내 좀 있었다. 그러다 아 오늘 밤 늦은 시간이면 어쩌지.. 이제 간격이 15분에서 10분 남짓. 밤 10시부터 모두들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차가 없고, 밤에 택시가 안 잡힐텐데.. 병원은 걸어서 30분 정도? 차로 5분 거리. 밤 10시에 분만 병원에 전화했더니, 일단 목욕을 하고, 릴렉스 해본 다음에도 간격이 그런 상태면 오고, 아니면 더 있다오란다. 나도 엄청 지금 당장 이라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택시가 있을 때 병원에 들어가서 밤새 받아주면 좋겠다... 생각으로 밤 11시경 택시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이제 3센티 정도 열렸다고, 남편이랑 좀 걷다 오란다. 1시간 반 정도, 병원 근처를 산책했다. 새벽 1시 30분. 다시 검사. 여전히 3센티 라며.. 이 상태로 병원에 있을 수는 없단다. 언제 열릴지 모르겠고, 집에가자마자 열릴지, 밤새 안열릴지 모르겠으니 일단 집에 가란다... 아 우리 차 없어, 그냥 있으면 안돼? 오늘 주말이라 택시 있을거야. 씨알도 안 먹혔다. 당연히 택시는 없었고, 남편 손에 의지해서 30분 가량 집에 걸어왔는데, 걸으면서도 느껴졌다. 점점 진통이 심해지고 있구나. 아니면 잘 걸은 덕분에 빨리 열린 건 지도 모르겠다. 걸으면서 나는 남편한테 점점 짜증을 내고 있었다. 남편의 질문이 귀찮아지기 시작했고, 말하기가 너무 힘들어져서 무슨 말만하면 남편한테 소리를 질렀다. 아 몰라! 이렇게.. (미안..). 집에 도착하니 2시 좀 넘어서, 진통이 점점 심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 이건가? 이게 진진통인가? 앱으로 보니 5분 간격이란다. 이게 충분히 센건가? 더 세져야하나? 이제 택시가 전혀 안 잡히는 상황이라 잠자는 누군가를 깨워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척 부담스러운 의사결정을 해야했다. 며칠 전에 주인아주머니가 이미 새벽 어떤 시간이래도 운전해줄 수 있으니 벨을 눌르라고 얘기를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진짜냐 아니냐를 몇번 고민하다가... 주인집 벨을 눌렀다. 다급하게 다다다다 내려오는 소리. 푸라우 리? 우린 줄 알고 계셨다는 듯, 그래 병원 가자. 하고 흔쾌히 나셔주셨다 한밤중 이 난리가 즐거운 듯 약간 상기되신 것 도..

 

병원에 거의 새벽 3시 다 돼서 도착해서 검사해보니 5-6센티 열렸단다. 이제 본격 시작이다. 몸이 덜덜 떨리고, 숨이 가빠지는 진진통이 시작됐다. 분만실에 드러누워서야 생각났다. 아 그래 이거였지 출산의 고통이란.. 이걸 다시 하고 있다니.. 무통주사가 곧 들어왔다. 무통 주사 없이 분만하신분들 정말 대단... 무통주사의 은혜속에 조금 쉬었다. 남편도 구석에서 자고, 나도 졸다 말다 하다가. 이번에는 내가 탈진할 정도는 아니라 잠이 완전히 들진 않았다. (저번에는 유도 분만 후 길어져서 구토하고 탈진하고 무통주사 맞고 뻗음). 5시 반? 6시쯤? 되니 의사가 이제 해보자 하셨다. 다 열린건가. 나는 무통 주사로 희미해진 자궁수축 앞에서도 그 느낌을 잡으면서 열심히 힘을 줬다. 저번보다 순조로웠다. 그래 거의 다왔습니다. 이번에는 의사가 물어보지도 않고, 베큠을 가져오셨다. 너~무 밑에 있어서 정말 잠깐만 땡겨주면 될 거 같았다고 나중에 설명해주셨고, 정말 그렇게 한번 힘줬더니 머리가 나왔고, 한번 더 힘줬더니 몸이 나와서 쑥 - 끝. 저번처럼 응급으로 가지도, 갑자기 의료진 8명이 병실을 다다닥 채우고, 한명은 내 위에서 배를 누르고 두명은 다리를 잡고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와 남편은 생각보다 우리가 저번 출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며.. (누구하나 잘못되는거 아닌가 하는 상황. 정말 그런식으로 의료진이 심각했음), 이렇게 끝난거에 매우 안도했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 

 

그렇게. 7월 31일. 오전 6시 30분. 출산.

아이도 바로 씻겨져 내 품에 와서 같은 방으로 보내졌다 (저번에 아이가 중환자실로 간 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또... ) 여기는 다 모자동실이라 아이가 내내 같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뭘 해도 처음보다 쉬운 느낌이었다. 여전히 수유는 힘들지만, 이제 애를 그렇게까지 굶기지 않고 바로 분유랑 병행해서 아이도 위험해지지 않았고, 나도 너무 고통스러운 순간은 없었다. 유축도 안하기로 했고, 그냥 되는대로 하자. 

 

이번에 달리 어려운 점은 역시 큰 애와의 관계다. 이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온 가족이 모두 아이의 얼굴만 보고 있다. 오늘은 어떤 마음일지. 본인도 헷갈려 하는 것 같다. 집에 온 아기가 좋으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고개를 드나보다. 힘들겠지 너의 그 마음이... 그 마음이 아플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엄마도 ㅠ 

 

우리 네 가족 이제 잘 해보자. 

우리도 넷이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