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enkirchener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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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일기.

애가 둘이니까 시간이 진짜 엄청나게 빨리 간다. 하루가 그냥 밥 3번 먹고 애들 먹이다보면 끝나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제 둘째가 50일이나 되면서 제법 잘 자랐고, 큰애도 적응해서 둘째와도 잘 지내고 있다. 물론 할머니의 역할이 너무나도 크고, 내가 둘째때문에 바쁠 때 할머니가 늘 아이가 소외되지 않게 돌봐줬는데 (내가 둘째를 안고 바쁠 때, 우리 큰 애가 하는 말: 어 여기 사람이 하나 없네, OO이를 안아줄 사람이 하나 없네. 하면 할머니가 달려가서 안아줬다..), 할머니가 한국으로 가신 다음에는 어떻게될지 모르겠다. 그때도 무슨 수가 있겠지..

 

둘째가 태어나자마자는 큰 애가 질투 폭발이라서 그게 무척 힘들었다. 매번 큰 애 눈치보기도 힘들고, 입을 삐쭉 내밀고 삐져있는 걸 보면 마음이 참 안 좋았다. 이 애도 아직 애긴데... 큰 애를 봐도 짠하고, 오빠 등살에 엄마한테 제대로 안겨있지도 못하는 둘째도 짠했다. 큰애랑 놀아주는데에 온 힘을 썼더니 한 1,2주 부터는 마음을 좀 풀어줘서 그 다음에는 다같이 적응해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큰애도 새로 태어난 동생이 좋은지 자주 손 잡아주고 안아주고 귀여워해주는데,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마음이 꽉 차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둘이라서 참 좋다는 생각이 그때마다 들곤한다. 

 

둘째는 정말 순둥순둥 잘 자라고 있다. 여우같은 딸래미가 순둥이 오빠를 잡으면 어쩌나 했는데, 여우는 우리 큰 애가 여우였고, 아직까지 둘째는 참 순하다. 그래서 그게 참 마음이 짠해.. 둘째도 역시 모유수유에 실패하면서 나는 내 애를 내 젖으로 한번도 배불리 먹여본적이 없는 엄마가 되었다. 이 기억은 엄마로서 상당히 트라우마 인데, 내 애가 굶주려 빽빽 우는 걸 감당해야 했고, 나는 분유가 없는 시대에 태어나서 아이를 낳았다면 내 애가 다 자라지 못하는 걸 봐야 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면 온몸이 떨릴 정도로 오싹하고, 갑자기 전쟁이 나서 슈퍼가 닫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애가 이유식 시작할 때 까지 해야한다. 실제로 큰 애때 코로나 록다운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사재기를 시작했는데, 난 정말 그때 너무 무서워서 분유 사재기를 시작했었다. 전쟁나서 피난가면 분유를 다 짊어지고 가야하나, 뜨거운 물을 어떻게 조달하지 이런 상상을 늘 하곤했다 물론 지금도 (실제로 유럽땅에 전쟁이 있는 중이라..). 그래서 그런지 모유수유에 대한 대화는 늘상 내 마음을 찌르르 아프게 한다. 

 

그동안 큰애 어린이집이 들쑥날쑥 했다. 여기는 9월을 기점으로 새로운 아이들이 몇 왔는데 (적응기간이라 엄마들도 반에 들어와있고), 우리 큰 애가 그렇게 반에 사람들이 바뀌는데 예민한 아이라.. 가면 그렇게 중간에 울었단다. 한동안은 애를 데릴러 갈 때 마다 축 쳐져서 힘없는 아이를 데려왔는데 그게 정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조금씩 나아진다는 얘기를 들을 때 그렇게 위안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등원 한 시간도 안돼서 데릴러 가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왜 인지 애가 계속 울고 소파에만 누워있었다고 애가 아프다고 데려가라고 했다. 우리 생각엔 그날이 우리 주말 여행 한 바로 다음 날 월요일이라 아이가 집을 너무 그리워하고, 여행이 너무 좋았어서 상대적으로 부모랑 떨어지기 더 힘들었나보다.. 생각했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애가 육체적으로 아프다고 열도 없는데 코로나 일 수도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못 오게 했다. 코로나 테스트 결과 음성이었고, 아무런 증상이 없다고 보내겠다 했더니, 오늘 음성이 내일 양성일 수도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못 오게 했다 (그러면 매일 모두가 테스트를 하던가..) 나는 진짜 너무 분하고 열받아서,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하지만(코로나라는게 또 확신할 수가 없기는 하지만), 너희가 지금 힘든 상황인 걸 이해하니(선생님들 병가로 부족, 새 아이들 적응기간) 하루 더 집에서 보고 보내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히려 나에게 요즘 아이가 좀 힘들어하고, 우리도 좀 힘든 상황이니 양해를 구한다고 집에서 하루 더 봐달라고 (내가 육아휴직 중이므로) 하면 흔쾌히 들어줬을 텐데, 애가 증상이 없는데 코로나 타령을 한다는게 너무 열받았다(이 반에 최근에 케이스가 있었다는 사실이 있긴 했지만). 너무 열받아서 하루 종일 부들부들 하다가, 퇴근한 남편에게 쏟아내고는 또 엉엉 울었다. 난 이 어린이집이랑 커뮤니케이션 할 때 마다 왜이렇게 힘든지... 남편이 나에게 한 말. 너랑 이성적으로 대화할 수 없는 주제가 딱 두개 있는데, 그게 모유수유랑 어린이집 이란다. 그 두개가 겹치면서 힘든 시기를 잠깐 보냈다 요즘. 이제는 우리 애도 새로운 애들에게 적응 잘 해서 어린이집 생활도 다시 편안하고 신나게 잘 하고 있다. 

 

지금 방금 지원서를 하나 접수했다. 이런 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다시금 한국에 엄청나게 가고 싶어졌다. 한국에 간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애가 둘이되니 정말 집이랑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졌다. 지금 지원하는 곳이 우리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대한민국 땅이니 뭐든 낫겠지 싶었다. 여기 지원할 마음을 다잡기 위해 4개월 동안이나 연락이 없는 전에 지원한 곳에 연락을 해봤더니 역시 긍정적인 답은 아니었고 또 공고를 낼테니 해봐도 된다고 했지만, 내 마음이 그쪽으로 가지질 않았다. 일주일 동안 계속 생각해보니 지금 지원할 곳도 어쩌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이 사람 저 사람 연락해서 얘기도 좀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일주일 내내 지원서가 머리속에 계속 떠다니니 육아에도 집중이 안되고 좀 멍한채로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지금 논문 수정 데드라인이 열흘 앞이라... 얼른 지원서를 쓰고 논문을 수정해야하는데.. 지원서 쓰느라 손을 전혀 안댔다. 요즘 다 자면 둘째애를 내 가슴팍에 얹어놓고 컴퓨터를 하는데, 그렇게 밤에 몇 번 더 해야할 것 같다.

 

참, 둘째는 아직 누워서 잘 못잔다. 게다가 자다가 깨서 자주 울면 큰 애가 깰거고, 그러면 큰 애 기분이 안좋아서 엄청 울고 징징댈거라... 아예 시도도 잘 못하고 있다. 그래도 애가 기특하게 통잠으로 가려는지 밤에는 몇 시 이후에는 진짜 잘 안 마시고 잠을 잔다. 눕혀서 안잔다는게 문제지만... 안아주거나 세워서 가슴팍에 눕혀야 잔다. 그래서 밤 마다 나, 남편, 우리 엄마가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고있다. 애를 내 가슴팍에 눕혀놓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서 자기도 하고, 졸고 그런다. 셋다 잠이 부족해서 이곳저곳 몸이 고장나기 시작했고, 엄마는 잇몸질환을, 남편은 약간 몸살기를 겪고 있다. 모두들 지금 건강을 챙겨야 한다. 누구 하나 아프면 안 돌아가는 시스템... 아프지 마세요 제발. ㅠ

 

이제 열흘 더 논문 수정 열심히 하면 드디어 한국에 간다. 엄마를 보낼 준비가 안돼서 내가 따라가기로 했다 애 둘 데리고. 그리고 우리 둘째 백일잔치 하고 와야지. 얼른 다 끝나고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시간은 또 갈테니 내가 빌지 않아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