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enkirchener

'일기장'에 해당되는 글 265건

  1. 2024.01.19
  2. 09.18
  3. 08.06
  4. 08.04
  5. 07.26
  6. 07.13
  7. 06.30
  8. 06.28
  9. 06.24
  10. 06.22

2024.01.19

카테고리 없음

1년 넘게 블로그 일기를 쓰지 않다가 다시 일기를 쓸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왜인지 블로그를 펴도 다시 일기를 쓰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오늘 왠지 새벽에 눈이 떠졌고, 오랜만에 티를 한 통 샀고 (+ 티팟) 그 마음이 이내 너무 기뻐 왠지 평소라면 안 살 것 같았지만 정말 잘 보고 있는 '홍차' 책을 다시 뒤적뒤적이다 중고책을 한권 더 구입하고, 뭔지 모르게 마음이 충만하여 (아마 오늘 페이퍼 거의 억셉 소식), 약간 붕붕 뜬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

 

마지막 일기부터 오늘까지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 한 해 였다는게 믿기지 않지만 우리 가족에게 최대의 전환점이 된 해 였다. 2023.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십 수년 만에 한 해를 온전히 살아낸 해. 아직 한달 여 남짓 남았지만, 한달 후가 되면 우리가 한국에 정착한지 딱 일년이 되고, 이제 앞으로 계속 여기서 이렇게 살 게 될 거라는 마음이다. 정착했지만, 뭔가 내것같지 않았던 내 공간도 서서히 자리 잡혀가고, 잊혀졌던 나의 물건들도 서서히 하나씩 모아지고 있다. 어머님 집에서 가져오지 않았던 내 티팟도 다시 가져와야지. 내 책들도 다시 꽂아놔야겠다. 

 

오빠는 커피에 취미를 붙여서 덕분에 나도 늘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어 기쁘고, 오빠는 이제는 잘 마시지 않지만 나는 다시 티를 모아모아 새벽에나 아침에 조금 일찍 눈이 떠졌을 때 한잔 씩 즐기고 있다. 내가 준비하고 마실 수 있는 건 이정도. 그래도 이 집 어느 구석에 내 구역이 생겨 기쁘다. 왜인지 나는 녹차는 잘 못 마시겠고, 홍차만 마시는데, 가향도 조금씩 더 즐기게 되면서 알아갈 수 있는 폭이 넓어져서 기쁘다. 다음에 티샵에 가면 우유를 넣어 마실 홍차를 구입해야지. 흐흐 (혹시 오빠도 이런 마음으로 오빠의 커피구역을 만들고 있는 걸까, 문득 든 생각). 

 

 

 

 

09.18

카테고리 없음

D+939

D+50

 

오랜만에 쓰는 일기.

애가 둘이니까 시간이 진짜 엄청나게 빨리 간다. 하루가 그냥 밥 3번 먹고 애들 먹이다보면 끝나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제 둘째가 50일이나 되면서 제법 잘 자랐고, 큰애도 적응해서 둘째와도 잘 지내고 있다. 물론 할머니의 역할이 너무나도 크고, 내가 둘째때문에 바쁠 때 할머니가 늘 아이가 소외되지 않게 돌봐줬는데 (내가 둘째를 안고 바쁠 때, 우리 큰 애가 하는 말: 어 여기 사람이 하나 없네, OO이를 안아줄 사람이 하나 없네. 하면 할머니가 달려가서 안아줬다..), 할머니가 한국으로 가신 다음에는 어떻게될지 모르겠다. 그때도 무슨 수가 있겠지..

 

둘째가 태어나자마자는 큰 애가 질투 폭발이라서 그게 무척 힘들었다. 매번 큰 애 눈치보기도 힘들고, 입을 삐쭉 내밀고 삐져있는 걸 보면 마음이 참 안 좋았다. 이 애도 아직 애긴데... 큰 애를 봐도 짠하고, 오빠 등살에 엄마한테 제대로 안겨있지도 못하는 둘째도 짠했다. 큰애랑 놀아주는데에 온 힘을 썼더니 한 1,2주 부터는 마음을 좀 풀어줘서 그 다음에는 다같이 적응해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큰애도 새로 태어난 동생이 좋은지 자주 손 잡아주고 안아주고 귀여워해주는데,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마음이 꽉 차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둘이라서 참 좋다는 생각이 그때마다 들곤한다. 

 

둘째는 정말 순둥순둥 잘 자라고 있다. 여우같은 딸래미가 순둥이 오빠를 잡으면 어쩌나 했는데, 여우는 우리 큰 애가 여우였고, 아직까지 둘째는 참 순하다. 그래서 그게 참 마음이 짠해.. 둘째도 역시 모유수유에 실패하면서 나는 내 애를 내 젖으로 한번도 배불리 먹여본적이 없는 엄마가 되었다. 이 기억은 엄마로서 상당히 트라우마 인데, 내 애가 굶주려 빽빽 우는 걸 감당해야 했고, 나는 분유가 없는 시대에 태어나서 아이를 낳았다면 내 애가 다 자라지 못하는 걸 봐야 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면 온몸이 떨릴 정도로 오싹하고, 갑자기 전쟁이 나서 슈퍼가 닫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애가 이유식 시작할 때 까지 해야한다. 실제로 큰 애때 코로나 록다운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사재기를 시작했는데, 난 정말 그때 너무 무서워서 분유 사재기를 시작했었다. 전쟁나서 피난가면 분유를 다 짊어지고 가야하나, 뜨거운 물을 어떻게 조달하지 이런 상상을 늘 하곤했다 물론 지금도 (실제로 유럽땅에 전쟁이 있는 중이라..). 그래서 그런지 모유수유에 대한 대화는 늘상 내 마음을 찌르르 아프게 한다. 

 

그동안 큰애 어린이집이 들쑥날쑥 했다. 여기는 9월을 기점으로 새로운 아이들이 몇 왔는데 (적응기간이라 엄마들도 반에 들어와있고), 우리 큰 애가 그렇게 반에 사람들이 바뀌는데 예민한 아이라.. 가면 그렇게 중간에 울었단다. 한동안은 애를 데릴러 갈 때 마다 축 쳐져서 힘없는 아이를 데려왔는데 그게 정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조금씩 나아진다는 얘기를 들을 때 그렇게 위안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등원 한 시간도 안돼서 데릴러 가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왜 인지 애가 계속 울고 소파에만 누워있었다고 애가 아프다고 데려가라고 했다. 우리 생각엔 그날이 우리 주말 여행 한 바로 다음 날 월요일이라 아이가 집을 너무 그리워하고, 여행이 너무 좋았어서 상대적으로 부모랑 떨어지기 더 힘들었나보다.. 생각했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애가 육체적으로 아프다고 열도 없는데 코로나 일 수도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못 오게 했다. 코로나 테스트 결과 음성이었고, 아무런 증상이 없다고 보내겠다 했더니, 오늘 음성이 내일 양성일 수도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못 오게 했다 (그러면 매일 모두가 테스트를 하던가..) 나는 진짜 너무 분하고 열받아서,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하지만(코로나라는게 또 확신할 수가 없기는 하지만), 너희가 지금 힘든 상황인 걸 이해하니(선생님들 병가로 부족, 새 아이들 적응기간) 하루 더 집에서 보고 보내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히려 나에게 요즘 아이가 좀 힘들어하고, 우리도 좀 힘든 상황이니 양해를 구한다고 집에서 하루 더 봐달라고 (내가 육아휴직 중이므로) 하면 흔쾌히 들어줬을 텐데, 애가 증상이 없는데 코로나 타령을 한다는게 너무 열받았다(이 반에 최근에 케이스가 있었다는 사실이 있긴 했지만). 너무 열받아서 하루 종일 부들부들 하다가, 퇴근한 남편에게 쏟아내고는 또 엉엉 울었다. 난 이 어린이집이랑 커뮤니케이션 할 때 마다 왜이렇게 힘든지... 남편이 나에게 한 말. 너랑 이성적으로 대화할 수 없는 주제가 딱 두개 있는데, 그게 모유수유랑 어린이집 이란다. 그 두개가 겹치면서 힘든 시기를 잠깐 보냈다 요즘. 이제는 우리 애도 새로운 애들에게 적응 잘 해서 어린이집 생활도 다시 편안하고 신나게 잘 하고 있다. 

 

지금 방금 지원서를 하나 접수했다. 이런 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다시금 한국에 엄청나게 가고 싶어졌다. 한국에 간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애가 둘이되니 정말 집이랑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졌다. 지금 지원하는 곳이 우리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대한민국 땅이니 뭐든 낫겠지 싶었다. 여기 지원할 마음을 다잡기 위해 4개월 동안이나 연락이 없는 전에 지원한 곳에 연락을 해봤더니 역시 긍정적인 답은 아니었고 또 공고를 낼테니 해봐도 된다고 했지만, 내 마음이 그쪽으로 가지질 않았다. 일주일 동안 계속 생각해보니 지금 지원할 곳도 어쩌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이 사람 저 사람 연락해서 얘기도 좀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일주일 내내 지원서가 머리속에 계속 떠다니니 육아에도 집중이 안되고 좀 멍한채로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지금 논문 수정 데드라인이 열흘 앞이라... 얼른 지원서를 쓰고 논문을 수정해야하는데.. 지원서 쓰느라 손을 전혀 안댔다. 요즘 다 자면 둘째애를 내 가슴팍에 얹어놓고 컴퓨터를 하는데, 그렇게 밤에 몇 번 더 해야할 것 같다.

 

참, 둘째는 아직 누워서 잘 못잔다. 게다가 자다가 깨서 자주 울면 큰 애가 깰거고, 그러면 큰 애 기분이 안좋아서 엄청 울고 징징댈거라... 아예 시도도 잘 못하고 있다. 그래도 애가 기특하게 통잠으로 가려는지 밤에는 몇 시 이후에는 진짜 잘 안 마시고 잠을 잔다. 눕혀서 안잔다는게 문제지만... 안아주거나 세워서 가슴팍에 눕혀야 잔다. 그래서 밤 마다 나, 남편, 우리 엄마가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고있다. 애를 내 가슴팍에 눕혀놓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서 자기도 하고, 졸고 그런다. 셋다 잠이 부족해서 이곳저곳 몸이 고장나기 시작했고, 엄마는 잇몸질환을, 남편은 약간 몸살기를 겪고 있다. 모두들 지금 건강을 챙겨야 한다. 누구 하나 아프면 안 돌아가는 시스템... 아프지 마세요 제발. ㅠ

 

이제 열흘 더 논문 수정 열심히 하면 드디어 한국에 간다. 엄마를 보낼 준비가 안돼서 내가 따라가기로 했다 애 둘 데리고. 그리고 우리 둘째 백일잔치 하고 와야지. 얼른 다 끝나고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시간은 또 갈테니 내가 빌지 않아도 되겠지.. 

08.06

카테고리 없음

D+896

D+7

 

두 아이의 육아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내가 상상한 우리 첫 아이는, 혹은 둘째 아이를 갖기로 했을 때 부터 걱정은, 아..우리 아들 순해서 둘째 여우같은 여동생한테 눌려살면 어쩌나. (금쪽이에 이런 사연이 가끔 있었음) 하는 걱정이었다. 왠지 친구 집에 가도 장난감을 뺏기기만 하는 것 같고, 그냥 줘서 갈등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동생을 기다릴 때도 어찌나 애틋하던지.. 이런 고민을 할 거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역시 애는 애 였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질투의 화신일 줄 누가 알았을까.. 우리 모두 당황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일단 도착한 첫날 이후에는 내가 애기를 안아주거나 젖을 물리면 굉장히 힘들어한다. 다 떼어가던 쪽쪽이도 다시 찾고 굉장히 울적해 한다. 행동에 있어서도 과격해지고 굉장히 화를 많이 내고 짜증을 부려서.. 아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어제 부터 나는 큰 아들 전담 육아를 하다가 심지어 젖을 물리는 것도 허락을 받고, 아기 울 때 달래주는 것도 허락을 받고 아이를 만나러 간다. 젖을 물리는 것도 마지못해 허락하고 나면 마음이 힘든지 쪽쪽이를 찾고 또 한참 짜증을 낸다. 아빠가 내가 큰 애 밥먹이는 동안 작은 아이를 보고 왔더니, 아이가 아빠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당황.. 그래서 낮 동안 주로 할머니가 아기 전담 마크로 기저귀도 갈고 분유수유를 하고, 내가 허락되는 한 모유수유를 하고 분유수유 해야 할 타이밍에 할머니에게 넘겨준다. 모유수유 하는 동안은 아빠나 할머니가 큰 애랑 열심히 놀아준다. 그래도 할머니가 어려워 하는 순간이 오면 (기저귀를 가는데 갑자기 똥을 싸서 옷을 다 갈아입혀야 한다던가, 배꼽관리 라던가 등, 내가 긴급호출이 되면) 아빠를 불러서 절대 아이를 혼자 두지 않는다. 오늘은 결국 본인도 젖병에 분유를 먹어야 한다고 해서, 내가 안고 젖병에 분유를 먹였지..

 

이렇게 이틀 했더니, 내 몸은 좀 힘들었지만 (출산한지 아직 일주일도 안됐는데 바닥에 앉아서 아이랑 각종 놀이를 해야함), 그래도 아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첫 이틀 처럼 힘들어하진 않았고, 여전히 힘든 순간이 종종 오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기분이 아주 나쁘진 않아보였다. 엄마랑 놀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준 다음에는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엄마가 병원 가 있는 이틀 (고작 이틀이었다..) 동안 불안했을테고, 엄마가 계속 애기만 본다고 생각했을 거라 열심히 우리 아들이 최고다 해주고 있다. 

 

내일부터는 조금 전략을 바꿔서,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계속 큰 애 눈치만 볼 순 없기 때문에, 아기니까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고 개입을 시키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요즘도 애기를 만져보고 싶어하고 확 끌어안을 때 마다 가슴이 철렁하지만, 놀람을 숨기고 잘한다 잘한다 예쁘다를 해줘서 본인이 소외되지 않았다고 느끼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할머니랑 나랑 그때마다 얼마나 가슴 졸이는지..

 

그래서 그런지 둘째 딸래미가 더 애틋해졌다. 이 애기는 본인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태어났는지, 수유텀도 긴 편이고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 이고), 수유하고 나면 잠도 잘 자고, 좀 눈 떠서 놀다가 또 자고, 밤에도 3-4시간 간격으로 먹으니, 12시에 먹여서 재우면 새벽 4시까지 잘 수 있다. 이런 축복스러운 육아가 어디있나...  큰 애 때는 시작이 정말 정말 힘들었어서 둘째 육아는 상대적으로 무리없이 가고 있다. 낮동안은 무슨 바람피는 사람 마냥 큰 애 눈치 보면서 둘째를 겨우 몇 번 안아보다가, 큰 애가 잠들고 난 후에 많이 안아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속에서 나왔는데 왜 내가 안아보질 못하니... ㅠ 언제쯤 평화가 올까. ㅎ

08.04

카테고리 없음

출산 D+5

남편찬스로 막간을 이용한 출산후기.

 

예정일은 7월 29일. 출산은 7월 31일 오전 6시 30분.

 

7월 28일. 목.

드디어 예정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날부터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이슬인가? 첫애는 3주나 일찍 양수가 터져서 유도분만을 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출산의 과정은 나도 생소해서 내내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읽기로는 점액이 많은 빨간색 이라던데.. 그냥 피가 조금, 손가락 하나 정도 양으로 나왔다. 처음엔 양수가 터진건가 싶어 놀랬다가 피여서 더 놀란 마음. 그래 이제 피가 나왔으니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일 안에 출산이 되긴 되는구나.. 놀란 마음에 출산 병원에 전화했더니, 일단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마침 두시간 후에 약속이 있던 터라 가보니, 피가 나온 건 어쨌든 출산의 시작을 알리는 거고,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 오늘은 아닐 수도 있겠다. 남편은 오전 회의만 하고 퇴근했다. 모두에게 곧 출산이 있을 것 같다고 알리고, 인사하고, 정리하고. 그래 진짜 몇 시간 안남았네.

 

7월 29일. 금.

예정일. 오늘은 우리 큰 애 어린이집 종강일. 방학식 겸 큰 아이들 졸업식 겸, 어린이집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가족들이 다 갈 수 있는 행사라 내가 이 행사는 우리 큰애를 위해 꼭 가고 싶었다. 속으로 아이야 방학식 끝나고 나와야 해. 오빠가 얼마나 실망하겠니. 제발 이 행사는 갈 수 있게 해줘. 라고 내내 얘기 한걸 들었는지 오전에도 아무 낌새가 없어서 나도 행사에 가기로 했다. 우리가 도착했더니 우리 애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저기 멀리서 부터 엄마를 보고 다다다다다다 뛰어오는데.. 그 표정이 말도 못하게 행복했다. 엄마 손을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다니면서 어린이집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자기도 엄마 왔다고 자랑도 하고 싶었나 보다. 그 자랑스러운 표정이 무척 흐뭇하면서도 마음이 아려 눈물이 날뻔했다. 엄마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 얼마나 초조했을 까. 어린이집 행사도 잘 끝나고, 할머니랑 점심도 잘 먹고, 피곤했는지 엄청 끙끙 대다가 우쿨렐레 선물을 받고 신난 어린이. 이 날도 출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분비물이 점액성 피로 바껴서, 아 이제 진짜 나오려나 보다. 두근두근.

 

7월 30일. 토.

점액성 피 분비물은 계속 이어졌다. 분비물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아 이제 진짜 나오겠구나 싶었다. 오후 2시반 3시 쯤 부터 배가 싸르르 아프기 시작했다. 아 이제 가진통이 시작되는건가. 약간 생리통 처럼 순간의 불편한 느낌이 잠깐 있다 없어지는 상태가 오후 내내 좀 있었다. 그러다 아 오늘 밤 늦은 시간이면 어쩌지.. 이제 간격이 15분에서 10분 남짓. 밤 10시부터 모두들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차가 없고, 밤에 택시가 안 잡힐텐데.. 병원은 걸어서 30분 정도? 차로 5분 거리. 밤 10시에 분만 병원에 전화했더니, 일단 목욕을 하고, 릴렉스 해본 다음에도 간격이 그런 상태면 오고, 아니면 더 있다오란다. 나도 엄청 지금 당장 이라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택시가 있을 때 병원에 들어가서 밤새 받아주면 좋겠다... 생각으로 밤 11시경 택시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이제 3센티 정도 열렸다고, 남편이랑 좀 걷다 오란다. 1시간 반 정도, 병원 근처를 산책했다. 새벽 1시 30분. 다시 검사. 여전히 3센티 라며.. 이 상태로 병원에 있을 수는 없단다. 언제 열릴지 모르겠고, 집에가자마자 열릴지, 밤새 안열릴지 모르겠으니 일단 집에 가란다... 아 우리 차 없어, 그냥 있으면 안돼? 오늘 주말이라 택시 있을거야. 씨알도 안 먹혔다. 당연히 택시는 없었고, 남편 손에 의지해서 30분 가량 집에 걸어왔는데, 걸으면서도 느껴졌다. 점점 진통이 심해지고 있구나. 아니면 잘 걸은 덕분에 빨리 열린 건 지도 모르겠다. 걸으면서 나는 남편한테 점점 짜증을 내고 있었다. 남편의 질문이 귀찮아지기 시작했고, 말하기가 너무 힘들어져서 무슨 말만하면 남편한테 소리를 질렀다. 아 몰라! 이렇게.. (미안..). 집에 도착하니 2시 좀 넘어서, 진통이 점점 심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 이건가? 이게 진진통인가? 앱으로 보니 5분 간격이란다. 이게 충분히 센건가? 더 세져야하나? 이제 택시가 전혀 안 잡히는 상황이라 잠자는 누군가를 깨워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척 부담스러운 의사결정을 해야했다. 며칠 전에 주인아주머니가 이미 새벽 어떤 시간이래도 운전해줄 수 있으니 벨을 눌르라고 얘기를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진짜냐 아니냐를 몇번 고민하다가... 주인집 벨을 눌렀다. 다급하게 다다다다 내려오는 소리. 푸라우 리? 우린 줄 알고 계셨다는 듯, 그래 병원 가자. 하고 흔쾌히 나셔주셨다 한밤중 이 난리가 즐거운 듯 약간 상기되신 것 도..

 

병원에 거의 새벽 3시 다 돼서 도착해서 검사해보니 5-6센티 열렸단다. 이제 본격 시작이다. 몸이 덜덜 떨리고, 숨이 가빠지는 진진통이 시작됐다. 분만실에 드러누워서야 생각났다. 아 그래 이거였지 출산의 고통이란.. 이걸 다시 하고 있다니.. 무통주사가 곧 들어왔다. 무통 주사 없이 분만하신분들 정말 대단... 무통주사의 은혜속에 조금 쉬었다. 남편도 구석에서 자고, 나도 졸다 말다 하다가. 이번에는 내가 탈진할 정도는 아니라 잠이 완전히 들진 않았다. (저번에는 유도 분만 후 길어져서 구토하고 탈진하고 무통주사 맞고 뻗음). 5시 반? 6시쯤? 되니 의사가 이제 해보자 하셨다. 다 열린건가. 나는 무통 주사로 희미해진 자궁수축 앞에서도 그 느낌을 잡으면서 열심히 힘을 줬다. 저번보다 순조로웠다. 그래 거의 다왔습니다. 이번에는 의사가 물어보지도 않고, 베큠을 가져오셨다. 너~무 밑에 있어서 정말 잠깐만 땡겨주면 될 거 같았다고 나중에 설명해주셨고, 정말 그렇게 한번 힘줬더니 머리가 나왔고, 한번 더 힘줬더니 몸이 나와서 쑥 - 끝. 저번처럼 응급으로 가지도, 갑자기 의료진 8명이 병실을 다다닥 채우고, 한명은 내 위에서 배를 누르고 두명은 다리를 잡고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와 남편은 생각보다 우리가 저번 출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며.. (누구하나 잘못되는거 아닌가 하는 상황. 정말 그런식으로 의료진이 심각했음), 이렇게 끝난거에 매우 안도했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 

 

그렇게. 7월 31일. 오전 6시 30분. 출산.

아이도 바로 씻겨져 내 품에 와서 같은 방으로 보내졌다 (저번에 아이가 중환자실로 간 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또... ) 여기는 다 모자동실이라 아이가 내내 같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뭘 해도 처음보다 쉬운 느낌이었다. 여전히 수유는 힘들지만, 이제 애를 그렇게까지 굶기지 않고 바로 분유랑 병행해서 아이도 위험해지지 않았고, 나도 너무 고통스러운 순간은 없었다. 유축도 안하기로 했고, 그냥 되는대로 하자. 

 

이번에 달리 어려운 점은 역시 큰 애와의 관계다. 이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온 가족이 모두 아이의 얼굴만 보고 있다. 오늘은 어떤 마음일지. 본인도 헷갈려 하는 것 같다. 집에 온 아기가 좋으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고개를 드나보다. 힘들겠지 너의 그 마음이... 그 마음이 아플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엄마도 ㅠ 

 

우리 네 가족 이제 잘 해보자. 

우리도 넷이 되었네. 

 

 

 

07.26

카테고리 없음

이번에는 뱃속에 아이가 조금 여유있게 ? 있어주는 바람에 나름 많은 준비를 끝냈다. 

첫 애 때는 예정일 3주 전에 양수부터 터져서 아무 준비도 없이 아이를 맞았는데, 이번에는 논문도 냈고, 침대도 설치했고, 옷정리도 얼추 했고, 그럭저럭 아이가 와도 적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예정일은 이제 3일 남았으니까 언제라도 애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인데, 그래서 매일 모두 조마조마한 와중에 일도 하고 정리도 하고 그러고 있다. 그래도 이 얼마나 다행인가.. 끝까지 버텨준 우리 새싹이.

 

큰 애가 둘째를 많이 기다린다. 매일 눈뜨면 '엄마, 애기 왔어?' 하고 묻는다. 아니 아직 엄마 뱃속에 있지~ 그러면 배를 한번 쓰다듬어 준다. 어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잔뜩 가져다가 아이 카시트에 가져다주고는, '애기 오면 이거 줄거야' 하는데, 내가 무슨 복이 있어 이렇게 사랑스런 아이를 키우나 싶어 마음이 뭉클하고 코끝이 시큰했다. 나에게 더 큰 사랑을 주는 우리 아이. 어제 남편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오늘 아빠의 하루는 조금 힘들었어, 아빠를 한번 안아줘. 했더니 성큼성큼 다가가 아빠를 안아준다. 그러고는 토닥토닥. 코끝이 또 시큰. 

 

요즘 일이 참 재밌다. 논문을 쓰는 일도 좋고, 남의 논문을 봐주는 일도 즐겁다. 논문을 집중적으로 봤더니, 역시 집중하는 맛이 있어서 즐거웠다. 집중할 때는 물론 마음이 초조하기도 하고, 마음이 힘들기도 하고 괴롭지만, 어쨌든 그 속에 들어가서 이렇게 하나씩 완성이 되어가는걸 보는 건 참 즐겁고, 이 일을 아직은 계속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일이 즐거워지고 있는 때에 휴직에 들어가서 아쉬우면서도, 그래도 전과 다르게 틈틈이 더 잘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자리를 잡고 계속 확장해 나가고 싶은 욕심이든다. 욕심을 더 내보자. 

 

 

 

 

 

07.13

카테고리 없음

2주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드디어 오셨다. 엄마가 오시기 전에 애기가 나올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히 둘째는 38주로 잘 진입할 것 같다. 우리 햇살이는 37주 +2일에 나와서 37주+2일이 되었을때 기분이 정말 요상했다. 어 첫번째 임신으로 치면 오늘 나왔는데? 정말 나오면 어쩌지? 37주가 될 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는데, 막상 엄마가 오시고 내 몸이 조금 안정적인 것 같아서 안심했다. 그리고 엄마가 계시니까 내가 무리할 일이 많이 없는데, 일단 엄마가 삼시세끼를 다 해주시고... 애를 번쩍번쩍 안아야 할 것도 엄마가 해주시고... 엄마가 다 해주시니 나는 해주는 밥 먹고, 일 해야할 때 컴퓨터 방에서 일 하다가, 애 데릴러 가서 애랑 같이 셋이 놀고, 엄마 할머니랑 있으면 할머니를 더 찾으니.. 내가 체력적으로 엄청 힘들일이 없어졌다 (물론 만삭이라는거 자체가 힘든거 빼고). 엄마가 오실 때 쯤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 (몸을 못 움직여서 청소는 못하고) 걱정만 많이 했는데 그거 또한 아 우리 엄만데 뭐 어때, 나를 욕하고 말겠지, 하고 배째라.. 엄마가 애 어린이집 가면 청소까지 하신다. 휴. 다 말해 뭐해. 엄마가 오시기 전날 마음이 참 초조 했는데, 엄마가 막상 도착하고 여기를 좋아하시니까 마음이 너무 놓인다. 다만 우리 남편 얼굴 보기가 어렵지.. 애도 아빠가 부쩍 안 보이는지 (출장 잡힘), 잠꼬대로는 아빠를 찾고, 아빠가 오면 그동안 서운했던 티를 낸다. 남편도 엄마 계실 때 일을 바짝 해놔야 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 

 

일주일 전에 원고는 보냈는데 아직 답을 못 받아서 일을 엄청 몰아치진 않고 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좀 더 있어서 일을 더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몰아치는 일이 잠깐 잠잠해 지니 약간 부유하고 있다. 이것도 조금 기웃, 저것도 조금 기웃,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아이가 또 감기에 걸려서... 어제는 유치원도 안가고 또 못 갈까봐 조마조마 하고 있기 땜에 시간이 날 때 마다 일을 바짝 해놔야 하는데, 급한일 해놓고 약간 풀어졌다. 이제 보스도 다시 돌아오신 것 같고, 이제 마무리 하면 될 것 같아서 정신 바짝 차려야지. 아직은 놓으면 안돼. 언제쯤 완전히 출산 모드로 될 진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일의 끈을 적당히 놓지 않고 있다. 제발 이 논문 제출하고 아가야 나오렴. 이번에는 할머니까지 계시고, 아가 오빠도 있으니까 훨씬 좋을거야~ 엄마도 노력해서 논문 하나라도 더 제출하고 정리할게. 

 

앞으로 출산(예정일)까지 2주 반. 그날그날 해야할일.

1. 코스타리카 논문 분석: 다시 해야할 것 순서 정하기, 코드 살펴보기

2. 문헌 정리: 내용 요약해놓기 - 다음달 보고서에 들어갈 내용

 

 

 

 

 

06.30

카테고리 없음

D+859

 

오늘의 육아일기.

요즘 내 몸이 힘들다는 핑계로 놀이터를 자주 안 데려갔었다. 워낙 좀 놀이터 가면 다른 엄마들도 봐야하고 피곤하다..는 생각이 많았던데다가 아이가 엄청 좋아하는 긴 미끄럼틀을 내가 태워줄 수가 없어서 그냥 좀 피했는데, 별 계획없이 나갔다가 놀이터까지 다녀왔다. 거기서 흥미로운 일이 있어서 잠깐 적어두려고..

 

이 동네에는 엄청 긴 미끄럼틀이 있는데, 나도 올라가면 무서운데 애는 오죽할까 싶었다 안그래도 겁도 많은 녀석이. 엄마는 진짜 10개월 막달 임산부라.. 엄마는 배에 애기가 있어서 같이 할 수가 없어. 라고 말했더니. 그럼 혼자 할거야. 하고 씩씩하게 올라갔다. 막상 올라갔는데 무서웠던지 엄마 와~ 엄마 같이 해~ 라고 계속 나를 불렀는데, 아니야 엄마는 할 수가 없어. 너무 무서우면 그냥 걸어내려오면 돼~ 다음에 아빠랑 같이 오자. 타고 내려올 수 있으면 엄마가 밑에서 받아줄게~ 하고 몇 분 얘기를 했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려나? 아니면 무서움을 참고 내려오려나? 어쩌려고 그러지.. 밑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정말 쿨하게, 그래 그러고는 다시 계단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한번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려오는 것도 물론 큰 마음이고 응원해주고 싶지만, 뭔가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스스로 돌아서 나오는 모습이 뭔가 뭉클해서 내려온 아이를 꼭 안아줬다. 돌아나오는 것도 정말 용기가 필요해. 막상 발 뺄 때를 아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실망했지, 다음에 애기 낳고 엄마가 꼭 같이 타줄게~ 했더니 아이도 기분좋게 응~ 해줘서, 마음이 내내 뭉클했다. 

 

오늘 사람이 없어서 혼자 놀이터를 전세놓고 놀고 있는데 한 8개월 정도 됐을까 싶은 아기가 놀러왔다. 우리 아이는 애기들을 너무 좋아해서 모래사장에서 같이 모래도 쌓고 웃어주고 너무 예쁘게 잘 놀았다. 그러다 또래로 돼 보이는 남자 아이가 왔는데, 우리 아이가 약간 긴장하는 것 같았다. 셋이 같이 모래 놀이를 했는데, 확실히 좀 더 긴장한 느낌 ? 그 아이도 장난감을 안갖고 나와서, 애기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 2개로 셋이 노는데, 확실히 우리 애는 뭔가 요구를 잘 안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난 우리 애 보다 눈치 더 많이 보는 여기 아이를 본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혼자 또 외국인이라 눈치를 많이 보는건지, 아니면 애초에 타고난 성질이 눈치를 많이 보고 조심성이 많은건지 헷갈렸다. (남편 말로는 본인이 어릴 때 부터 눈치를 많이 보고 예민했다 함..) 눈치를 보고 상황 판단을 하는건지 같이 놀던 아기가 돌아갈 채비를 하자 빌려준 장난감을 돌려주고 쿨하게 돌아나왔다. 우리 아이는 관찰할 수록 눈치를 많이 보고, 예민하고, 똘똘한 아이인데.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줘야 마음을 다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치면서 잘 자랄 수 있을지.. 늘 고민이 된다. 

 

 

 

06.28

카테고리 없음

저번주는 정말 일도 열심히 하고, 육아도 열심히 하고, 남편도 잘 돌봤다. 주말 여행까지 완벽.

아이의 장염이 다 나으면서 주5일 어린이집을 드디어 완료했고, 나는 그 사이 일의 끈을 좀 놓지않고 조금씩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남편이 아이한테서 장염을 옮아서 또 심하게 앓았는데.. 그래도 아이가 어린이집에가니까 아침 시간에 남편이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남편도 빨리 회복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뭐 흰죽 만들기.. 정도 였어서 많이 뭘 한건 없지만 그래도 그 사이 남편이 회복해서 다행이었다.

 

주말여행으로 토일월 2박 3일 뮌헨에 다녀온 것도 무척 좋았다. 뮌헨은 당일치기로 가능한 곳이라 그동안 잠을 잘 생각까진 안했었는데,  이 동네가 G7때문에 너무 떠들썩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다 아이 어린이집도 안가는데 이 긴 주말에 뭐라도 좀 하자.. 싶어 가까운 옆동네로 다녀왔다. 출산 관련해서 문제가 생기면 빨리 올 생각에 근거리로.. 우리 셋이 이제 여행다니는게 조금 익숙해졌는지, 우리가 아이 컨디션에 맞게 계획을 잘 세우는건지 모르겠지만, 여행 다니면 늘 즐겁다. ㅎ 아이도 잘 놀고, 호텔도 좋아하고, 호텔에서 먹는 조식은 특히 좋아하고, 셋이 죽이 잘 맞고, 아이도 얼굴 시뻘겋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잘 놀아서 참 좋았다. 보통 아이가 좋아하는거 위주로 계획을 세워서 그게 별로 안 즐거울거 같지만 사실 상당히 즐겁다. 이번에도 주로, 비행기 박물관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해서 아이가 엄청 좋아함, 공간 자체가 넓어서 뛰어다니기 좋음), BMW 박물관, 전시장 (오토바이를 탈 수 있도록 해둠)에 가서 애가 좋아하는거 실컷 탈 수 있게 해주고 공원에가서 놀았다. 내 눈에는 바퀴 두개는 오토바이요, 네개는 자동차니라... 정도만 알 수 있고, 비행기 박물관에 가도 비행기와 헬기 정도 구분할 수 있는데 ㅎ  남편이 잘 봐줘서 아이는 엄청 잘 돌아다녔다. 나는 임산부 찬스로 의자가 나올 때 마다 쉬면서 이 남자들을 기다렸다. 그것도 나름 괜찮. 비행기들도 이렇게 보니 생각보다 멋있어서 흥미로웠다..ㅎㅎ 애가 잠드는 시간엔 그래도 부모가 좋아하는 미술관에도 가서 약간 쉬면서 그림도 보고, 애가 다시 깨면 미술관 그림도 보여줬다가 그 앞 잔디밭에서 또 뛰면서 놀았다. 그것도 참 평화로웠다. 날이 더워서 수족관은 내가 좀 우겨서 간 거지만.. 그래도 아이가 작년에 갔을 때 보다 물고기에 훨씬 관심도 많아서 좋았다. 도시에는 참 재밌는게 많구려. ㅎ 남편도 나도 사실은 도시를 좋아하는 체질이라 이렇게 나와서 한번씩 바람도 쐬고 구경도 하면 또 그것도 나름대로 즐겁다. 루프탑이 있는 호텔이라 자는 아이를 유모차에 따뜻하게 태워서 올라가서 남편이랑 노을진 하늘을 보면서 수다 떤 것도 참 좋았다. 

 

 

 

이렇게 혼을 쏟은 일주일을 보내서 인지, 내가 몸 컨디션이 안좋아졌다. 위산역류로 인한 건지 감기에 걸린건지 모르겠지만, 목이 완전히 가서 목소리가 안나오고 있다. 여행 첫날에 밥을 좀 대충먹고, 탄산음료를 많이 먹었더니 위산 역류가 심해져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을 정도였다. 그날 새벽에 왜인지 (내 기분탓인지), 아이 태동이 잘 느껴지지 않아 다음날 아침까지 무척 마음이 심란했다. 여행을 고 해야 하나 스톱해야하나 속으로 생각했는데, 그래도 조금씩 태동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고 (아예 안느껴지는건 아니고..), 여행을 멈출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강행 했었는데, 다행히 둘째날부터는 우리도 여행에 적응하고, 밥도 제대로된거로 잘 챙겨먹으면서 좋아졌다. 집에 오니 다시 태동은 힘차게 잘 느껴진다. 오늘 다행히 아이가 낮잠을 길게 자줘서 셋이 다 회복시간을 잘 가졌는데, 내가 저번주에 열심히 달리던 일로 복귀를 잘 못하고 있다..  벌써 화요일이 끝났는데 아직 일로 복귀를 못하고 있다. 저번주에 보내고 갔어야 했는데.... 큰 걱정.

 

 

 

 

 

 

 

 

06.24

카테고리 없음

드디어 아이가 어린이집에 주5일을 다 갔다. 그 덕에 남편도 나도 회복을 많이 해서 이제 떡볶이를 해먹을 수 있을정도로 위장이 튼튼해졌다. 흰죽을 끝내버리자 마자 조금씩 먹기 시작하더니 역시 마지막은 떡볶이지 암. 

6월은 내내 아프다가 끝나는 기분이라 초조, 불안 했는데, 지금도 앞으로 7월 일 일정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히지만, 그래도 이번주 잘 살아냈다. 일이 그런대로 많이 정리가 돼서 조금 손에 잡히는 기분이다 싶어서 .. 늦어지는 거는.. 뭐 더 해야지 어쩌겠어.. 라고 위로하고 있다. ㅠ아이는 어린이집 5일이 버거웠던 건지, 거기에 또 무슨 바이러스가 도는건지 감기증상이 있다. 코를 훌쩍이고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안돼... 제발... ㅠ 

 

이동네가 정상회의로 시끄럽다. 시골동네에 세계정상 7명이나 오다보니 (미국대통령까지!) 아주 난리다. 연구소는 미군부대 근처에 있는데, 미국대통령들은 방문했을 때 자국의 부대를 꼭 방문해서 그렇다는건지, 신분증 지참 및 연구소 등록 확인서? 연구소 ID 카드를 꼭 지참하라는 안내사항이 내려왔다. 우리집 옆으로 도로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전국에서 온 경찰차들로 매일 분주하다. 본격적으로 정상회의가 시작되는 주말과 다음주 초에는 학교와 어린이집도 모두 닫기 때문에 우리는 이 동네를 잠시 벗어나 있기로 했다. 내가 만삭이라 어디 멀리는 못가고 바로 옆동네로.. 그마저도 일단 내일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발제발제발.

 

 

06.22

카테고리 없음

임신 막달로 가면서 컨디션이 급속도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좀 지나고 보니 우리 둘다 애기한테 장염을 옮아온거였다. 

난 하루 이틀 꼼짝없이 누워있었는데, 약간 체한 것도 같고, 몸이 너무 안좋아서 그냥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다. 코로나 인가 싶어 코로나 테스트도 매일 함. 내가 너무 뻗어있으니 남편은 몸이 안좋지만, 그래도 애를 픽업하고 등등 했는데, 거기도 알고보니 심한 장염에 걸린 터라 오후 내내 열과 씨름하고, 우리 둘다 밤새 설사를 내보내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애가 아프면 그 다음에 바로 아빠- 엄마까지 아프다보니 6월은 또 내내 아프다 끝나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하다. 

 

항상 이렇게 힘들때면 둘째를 원망했다. 아직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우리 둘째. 우리가 정말 더 행복해지려고 한 선택이겠지? 근데 왜 이렇게 힘드나? 남편은 첫째 때도 그랬지만, 애가 나오기 전까지 특별히 별 느낌이 없는 듯 하다. 좋다 싫다 뭔 말이 없다. 그냥 힘들겠다 정도.. 첫째 임신때와 다르게 이번에 일 욕심도 막 생기던 참이라 마음이 무겁다. 다시 잘 타파하고 잘 해나갈 수 있겠지. 일이야 뭐 아무렴 어때 하면서도, 일이란 건 그래도 나의 정체성을 어느정도 지켜주는 것, 나의 자존심을 좀 지켜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놓을 수가 없다. 싱글 언니들이 훨훨 일 잘하고 있는 거 보면 부럽고, 나도 더 잘하는 사람인데 쭈구러져 있는거 보면 답답하다. 그래도 지금 열심히 하는 시니어 들 중에 애를 둘 셋 키우면서도 그 자리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잘 할 수 있다 정신승리 하고 있는 중이다. 일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또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는 엄마를 보면서 배우는게 있더라 커서 보니. 열심히 살고 잘못하면서 살지 않으면 아이들은 어떻게든 나에게 적응하게 되겠지 내가 엄마니깐. 내가 마음을 단단히 잘 먹어야지.